상승하던 사업은 건축업자의부도,
아파트에 납품업의 우리도 덩달아 연쇄부도
헤어날길이 없어, 초등학교3, 4 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삼천포 산동네로 이사를가서 살게 되었다.
급격한 환경변화에 심리적 불안감 해소가
물질보다 더 중요했던 때,
적응시기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반기고
기다려주는 애미가 되어야했다.
한창자라는 아이들의 먹거리는
가장 적은돈으로 최고의 영양을 높이는 효과는
즐겁게 먹이고, 맛있는 분위기를 만드는것 ,
밖에 방법이 없었다.
휴일이면 동네앞 바닷가에 소풍가서 먹이는 라면,
피자 헴버그를 먹던 아이들에게 신바람을 일어켜
꽁보리밥 짖는법을 가르치며 참여시켜서 만든점심
된장 밥솥에 얹어서.. 그때먹던 보리밥,
어른이된 내 아이들은
지금도 그 맛있는 보리밥을 잊을수가 없다하네.
한푼이라도 절실하여 직장을 찾아나가야 했을때 나는,
여유로운듯 쑥을캐서 쑥차를 만들고,
칡 썰어 말이고,금은화줄기를..
밀감껍질을 씻어 말려서 차를 아주 연하게 다려
번갈아 가며 보리차 대신 했는데,
칡이나 쑥은 아주 미량을 넣어도 검은물,
우리 아이들의 물한잔...
아이들은 물컵을들면 블랙워터!블랙워터!
그때 다행이 별다른 약 없이도 잘 자라 주었다.
지금, 나는
건강하고, 저항력있게 키워야했던
내 아이들을 생각하며 만들었던 그때의 블랙워터를
다시 만들며 살아가려한다.
나만의 쑥차를 만들고, 칡차도 만들고,
바닷가 산등성이 해풍으로 금색, 은색꽃을 한줄기에
피우던 인동덩굴차도 만들러 떠나려 한다.
아름답고 건강한 산과 들을 헤메며 사는,
진정 나 자신부터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연인이 되려고 떠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