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 둘이 엉덩이를 치켜들고
땅바닥에 기어 다니는 개미를 살피며 놀고있다.
중학교 입학하여
내성적인 내게 가까이 다가온 첫친구
쉬는시간 내내 운동장 한구석
무리지어 가고있는 개미를 보며
가까워진 친구 장경자가 생각난다.
그 친구는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변했을까.
멋있는 친구로 변했을듯하다.
우리는 나쁜개미 착한개미 구분지우지 않고본다. 대개는.
나는 내삶을 옳고 거르고를 평가받고 싶지않다.
나도 내 시각으로 단정 지우기를 가능한한 피한다.
그러나, 피가 솟구치는 일은
아이들을 헤치는 어른들 이야기다.
내 아이 둘이 어린날, 마산역앞
시위진압으로 최루탄을 난무하게 쏘아대던 날
가게문 꽁공닫고 있어도
새어들어오는 연기로,애들은 매워서 울고불고,
난 애기들 때문에 울고불고, 분노에 차서 울고불고..
지금도 감정조절이 안되는 분노는
아이들을 헤치는 어른들 때문에 피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