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용운

이 금 숙 2018. 11. 25. 22:15

군말/한용운


'님'만 님이 아니라 긔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의 님이 봄비라면 마시니의 님은 이태리다.


님은 내가 사랑할뿐만 아니라 나를 사랑하나니라.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의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느냐.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          


 - 한용운, [군말] 全文




알 수 없어요/ 한용운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뿌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적은 시내는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굼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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